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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Chet Baker는 왜 언제나 이렇게 로맨틱한가. 새벽 미명 같은 트럼펫 소리는 나른한 울적함을 준다. 아니 해가 질 즈음의 순간, 3단 스탠드의 불빛을 한 칸 낮춘 듯 온 세상이 한 톤 어두워지는, 헤드라이터 불 빛이 왠지 아련해지는 퇴근길 시간같다. 그것도 아니면 낮잠을 자다가 어슴푸레 해질녘에 커튼 그림자도 지지 않는 어두운 거실의 소파위에서 깨어난 기분. 어느 쪽이라도 모든 것이 뚜렷해지는 선명한 아침과 선명하다 못해 짙어지는 정오의 쨍한 색감은 아닌 것이다. 벌겋게 변해가는 바닷가 동네의 놀이터처럼 바래진다. 그렇게 나른해지는데도 음악이 끝나면 이상하도록 꿈틀대는 생동감을 전해준다. 오늘 남은 시간을 이렇게 다 보낼 수는 없어. 자 일어나서 빨래도 돌리고 청소기도 돌리자. 그리고 나서는 읽고 ..
살다보니까. 절대 안 겪을 것 같던 일도 겪고 산다. 아직 서른도 안 되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쓰면서도 무슨 소리야 싶지만 그렇다. 가을날은 화창하고 커피머신은 아직 켜져있다. 커피를 내린 지 한 두시간 쯤 되었을거다. 바깥은 조용하고, 새도 아주 조그맣게 울고, 바람도 없어서 낙엽도 지지 않는 오후다. 한참 아미앵의 성서를 찾아보았는데 찾는 데 실패했다. 원래 분량이 한 장 정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디지털 시대라고 말하기에는 이 디지털이라는 단어도 하도 오래 되어서 촌스럽게 느껴지는데 아무튼 나는 이 시대를 사는 이십대 재빨라야 할 나이에 정보하나 제대로 못 찾는 뒤떨어진 젊은이다. 프루스트는 젊은 시절을 어떻게 보냈을까 했는데, 작가 소개를 펴보니 이렇게 쓰여있다. 1922-187..
내가 존재하는 소리보다 이 공간을 더욱 채운 냉장고 소리. 이 방에는 냉장고가 살아있다. 나보다 더 강력히. 냉장고 소리에 파묻혀 누워있다. 여름 날에나 있는 일이다. 발콘 쪽 큰 문을 열어 두었는데도 빠져나가지 않는 냉장고의 목소리가 나를 쫓아내려 하는 건가. 열린 문으로는 아무도 나가지 않고 들어오기만 한다. 이상하게 꾸웩대는 새가, 올 해 희한하게 많은 벌이, 꼭 집 혼자 있으면 어느새 들어온 자동차가, 하늘에 날아가는 헬리콥터가 두두두두. 냉장고 소리에 묻혀 있다보니 귀를 스치는 파리 소리가 새삼 신선하다. 윙 윙 하는 소리가 엄청 좋은 헤드셋을 끼고 듣는 영화 속 액션 장면 같다. 왼쪽 오른 쪽 윙윙 하니 소름이 돋는 생생한 소리가 냉장고보다 내가 더욱 살았구나 하고 깨워내어서 세수를 하러 화장..
동생에게 주었던 오래 전 엠피쓰리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노래가 흘러 나온다. 십대 때 듣던 노래들. 랜덤으로 넘기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추억들이 떠올라서, 애틋했던 그 시절 동네가 그리워져서 사 분 남짓한 시간이 어느 여름 하루가 되고, 삼 분 이십초의 시간이 어린 가슴에 처음 닿았던 쓸쓸한 바람으로 분다. 부푼 마음을 안고 탔던 비행기 안에서 울며 들었던 그 노래가, 스무살의 처음 맞았던 타지에서의 생일 전 날 밤이, 휴일 오후 혼자 해 먹었던 볶음밥이 서러웠던 시간이, 어슴푸레하게 내려 앉은 공기를 마시며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어딘가라고 들떠하며 조용한 주택가 언덕길을 내려오던 날이 랜덤으로 넘어가는 트랙에 남아있다. 잊었는 줄 알고 늘 아쉬워했던 그 기억들이 아직 내 귀속에 남아서 뉴런들 사이사..
뜹뜨릅 씁쓸한 사이도 그냥 지나간 하루 사이에 용서할 수 있나보다. 지나간 일들이 생각 날 때마다 "그 인간... 그..... 그 자식......." 하던 일이, 언젠가라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던 그 일들이 그냥 사람이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는 거니까... 사람이 나쁜 건 아니니까... 아닐테니까.... "잘 들어가세요. " 새벽녘 하늘을 등지고 인사할 수 있는 사이가 되는 거구나. 살다보면 그런 일 들도 몇 시간 사이에 용서 할 수 있구나. 이래서 실천이 필요하다고 하는 거구나... 말로 백 번 용서 용서.. 말 하는 것 보다 한 번 이해해 보는 것이 옳은 거라고. 앞으론 마주쳐도 웃으며 인사해야 하겠지? 딱히 용서라고 말 할 만큼 계기가 있던 것도 사과를 받은 것도 아니지만. 그냥 이렇게 넘어가도 될..
무엇을 보고도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던 이십대 초반이 지나고, 스무살 남짓한 친구들을 보면 '아 나도 이제 늙었구나'싶은 아쉬운 이십대 중반이다. 어른들이야 '아친구 어직 어린친구가 벌써 그런 말을 하면 못 써' 하시겠지만 이렇든 저렇든 아쉬운 시간은 지나가고 그 아쉬움으로 가끔은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고픈 나이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십대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던 적은 없었다. 어른이 빨리 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어느때까지나 어린아이로 지내고 싶어하지도 않았지만 싱그러웠던 스무살이 지나간 것이 아쉬운 것이야 똑같아 서글퍼진다. 지나가는 구름을 보고도 내리는 비를 보고도,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을 보고도, 나뒹구는 나뭇가지를 보고도, 떠..
"네가 행복해지길 바래. 지금의 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와 함께있는 네가." "요새는 아무것도 재미있지 않아." ".................." "그냥 다.... 다 그냥 그래서 무엇도 다 그냥 그래. 말 그대로 그냥 그래." 찻잔 속의 차도 그냥 그런 온도로 식어있다. 찻잔을 이리저리 돌려도 그냥 식은 찻 물일 뿐이지. 찻잔 속의 남아 겉도는 식어버린 차가 마음속의 어떤 열정도 식어 마시기 뭐 한 찝찝함으로 담겨있다. 담겨있을 뿐인 걸까. 티백의 미세한 구멍을 삐져나와 어느덧 컵 바닥에 가라앉은 찻가루가 보이는, 원래는 따뜻했던 향기로운 차가 그저 식었다는 이유만으로 남이 먹다 남긴 반 모금 물처럼 마시기엔 영 찝찝한 설거지거리가 된 것 처럼. 설탕으로도 과자로도 넘길 수 없는 식어버린 차. ..
내 마음은 울렁거리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것에. 그렇다. 분명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 때문에 울렁거리고 있다. 마음이 이 쪽 벽에, 저 쪽 벽에 마구, 난로에 넣는 기름통 속 출렁거리는 기름처럼. 뚜껑을 열면 벤진 냄새가 진동을해서 코를 막아야하는 기름같은 마음의 물이 울렁거린다. 멀어져 간다고 느껴서일까. 그렇다면 무엇이. 무엇이 머물지 않아서 나는 출렁이고 있는 걸까. 바다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도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바다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바다를 바라보지 않는다. 바라 볼 수가 없다. 바라볼 수가 없는 걸까. 나는 바다를 바라볼 수 없는 걸까. 아무 것도 섞이지 않은 듯 투명한 바닷속을 바라볼 수가 없는 것이다. 하얀 물거품을, 햇빛이 또 하얗게 부서지는 하늘의 파란 것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