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단상 (20)
포기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Chet Baker는 왜 언제나 이렇게 로맨틱한가. 새벽 미명 같은 트럼펫 소리는 나른한 울적함을 준다. 아니 해가 질 즈음의 순간, 3단 스탠드의 불빛을 한 칸 낮춘 듯 온 세상이 한 톤 어두워지는, 헤드라이터 불 빛이 왠지 아련해지는 퇴근길 시간같다. 그것도 아니면 낮잠을 자다가 어슴푸레 해질녘에 커튼 그림자도 지지 않는 어두운 거실의 소파위에서 깨어난 기분. 어느 쪽이라도 모든 것이 뚜렷해지는 선명한 아침과 선명하다 못해 짙어지는 정오의 쨍한 색감은 아닌 것이다. 벌겋게 변해가는 바닷가 동네의 놀이터처럼 바래진다. 그렇게 나른해지는데도 음악이 끝나면 이상하도록 꿈틀대는 생동감을 전해준다. 오늘 남은 시간을 이렇게 다 보낼 수는 없어. 자 일어나서 빨래도 돌리고 청소기도 돌리자. 그리고 나서는 읽고 ..
마음대로 살 수가 없다 아마 그 누구도 마음대로 살 지 못 할 거다. 마음대로 산다는 것이 도대체 뭐기에- 왜 자꾸 누구는 마음대로 살으라 하고, 또 누구는 마음대로 살지 마라, 또 누구는 마음대로 사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작아지는 것일까. 나는 마음대로 살고 있지만, 또 마음대로 살지 못해서 도무지 마음대로 마음만큼 살 지 못한다. 마음대로 글을 쓰고 싶지 않지만, 그 역시 마음대로라서 사람마다 마음이 다 달라 결국엔 '니 마음만 있냐 내 마음도 있다.' 라고 유치한 싸움이 시작된다. 존 러스킨도 마음대로 결국엔 살았구나 싶고, 그렇다고 파스칼이 마음대로 안 살았겠냐는 생각을 해 본다. 몽테뉴는 그 어딘가에서 결국은 마음대로 살았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모든 것이 한계가 아니겠느냐 하는..
그 말이 싫다.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젊은 세대가 분노한다는 뉴스는 맘에 들지 않는다. 분노의 제목은 그것이 되어서는 안되었다. 더욱이 뉴스의 제목은 그것이 되면 안되었다. 늘 분노보다 앞서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분노가 이는 것은 매사에 막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 되는 가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다. 어떠한 일을 이루거나 망치는 일에 기여하는 큰 요소가 감정이니 당연히 감정을 드러내는 데에 올바른 이유를 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기쁨, 환희, 행복 처럼 긍정의 감정이 아니라 화, 분노, 슬픔, 통탄 이라는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데에야 오죽 하겠는가. '화'는 대부분 많은 것을 어그러뜨린다. 올바른 대의를 가지고 시작해도 화 ..
폭- 작약 꽃잎이 떨어지는 소리에 잠을 깨다. 매년 5-6 월이 되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색색깔 작약 덕분이다. 베이비핑크색부터 연어색이 비치는 분홍, 쨍하게 빛나는 마젠타빛깔, 동화속 공주님 치맛단 같은 하얀 겹꽃잎들을 보고있으면 늘어져 있던 공기가 금방 맑아지는 듯 하다. 길거리에 벌여놓은 꽃 노점상을 지나가는 일은 그래서 더욱 즐겁다. 특히 요즘은 지날 때마다 한아름 꽃을 사고 싶어서 한참 구경 하곤 한다. 가끔은 한 두 단 씩 집어 오기도 하는데, 작약을 살 때마다 꼭 이야깃거리가 생겨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린다. 늘 그렇듯 작약을 사들고 집에 오면 작은 방에는 좀 과하다 싶은 긴 꽃병을 찾아 즐거이 씻는다. 남자친구가 작약을 꽂으려면 이렇게 긴 꽃병이 필요할 것 같아..
응달에 선 나무는 낙엽도 더 늦게 지는가. 4월이 벌써 반이나 지났다. 그만큼 봄이 더 발랄해져 간다. 오스터 글로케* 가 긴 겨울을 녹이며 회색빛 거리에 봄의 노랑색 기대를 부풀리더니, 고등학교 시절 교목이서인지 늘 새 시작을 알리는 듯 풋풋한 목련이 이파리도 나지 않은 가지에 그렇게나 가득 피어난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벚꽃이 분홍 빛 설렘으로 거리를 물들인다. 좋은 기억도, 생각하면 한없이 슬픈 기억도 꽃송이들과 함께 봄바람에 흔들려 떨어진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진득히 한 주도 채 즐기지 못했는데 변덕스런 아프릴베터에 벚꽃은 아쉽게 흩어져 버린다. 어느 계절보다 빨리 지나가버리는 봄이 아쉬워 질 때. 그 때가 비로소 겹벚꽃나무의 시간이다. 많은 봄꽃들이 아쉽게 지는 4월 중순에 다른 꽃들보다 해를..
산책 나가지 못하는 오후의 심란함. 팡세 269(139), 267 못 나가게 붙잡는 것은 하나도 없다. 날씨도 좋고, 이제 바람도 따뜻한 느낌이고, 몸이 안 좋은 것도 아니며 더구나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도 잠깐의 산책이 오늘따라 번거롭게 느껴진다. 항상 가벼운 마음으로 나가던 산책이 이렇게 좋은 봄 날 망설여 지다니. 기분이 영 상쾌하지 않다. 구시가 성벽길의 나무에도, 동네 가로수에도, 자잘한 풀꽃들에도 봄이 왔다. 봄은 역시 땅에서부터 오는 지 구석구석 귀여운 새싹들이 돋았다. 봄이 올 때마다 늘 가던 길을 멈추고 소란스레 감탄을 해대며 사랑스러워하던 그 새싹들일 것이다. 그런데 올 봄, 이 화창한 오늘, 산책이 이렇게나 망설여지는 것이 이상스러워 생각을 하던 중 내 마음 어딘가가 다르..
오해의 해답 제목이 그럴싸하다. '오해'라는 말을 검색해보니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그릇되게 해석하다' 또는 '뜻을 잘못 알다.' 말 그대로다. 이해하는 당사자가 무언가 해석을 잘 못 했기에 생기는 것이 '오해'라는 것이다. "오해가 있으신 것 같네요. 제 말 뜻은 그게 아니라.... " '오해'라는 말과 함께 쏟아져 나오는 일종의 방어 혹은 변명의 관용구이다. 각자의 이유로 오해라는 말을 참 많이 쓰는데 물론 어떤 행동이나 대화속에서 상대방은 어떤 액션도 말도 하지 않았지만 굳이 -육감적으로 혹은 감정의 골이 깊어 사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넘겨짚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오해'라는 말은 쉽게 쓸 ..
내가 잘 하는 말이 있다. '끼리끼리 만나는 거지. 냅둬-.' 혼자 열심히 장조림을 먹으면서, 끼리끼리라는 말에 목이 메었다. 사실은, '끼리 끼리 만나는 건데 뭐. 알아서들 하겠지. 으응~~' 하는 말을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들어 더 없이 불쾌했던 순간이 떠올라서 그랬다. 하루 정도가 지나 뻑뻑한 브뢰첸을 먹으며 다시 생각하니, 억울한 생각이 드는 관계들이 떠올라 그랬나? 하고 마음속으로 눈치를 본다. 그렇기도 한 것이, 그들. 바로 그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볼드모트도 아니지만 입에 올리고 싶지 않은 그들의 얼굴들이 하나 씩 지나가며 노려보는 것 같아 눈치를 보게된다. 누구나 대인관계를 가지다보면 면전에서 기분 나쁜 말을 듣는다든가, 비꼼을 당하는 상황을 맞거나, 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