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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썬댄스바디워쉬

MedHase 2015. 10. 29. 00:33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보이는 것은 늘 다가 아니다.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 어떤 사람이,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사는 방식이, 사교성이 없어보이는 사람의 친구가 몇 명이나 될 지는 보이는 대로 다가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어느 동네에나 살아보지 않고서는 바람이 어떤지 팔월의 햇살이 어떤지 눈이 자주 오는 편인지 얼만큼 쌓이는 지, 밤에 버스가 지나갈 때 주황 불을 켜는 지 노란 불을 켜는 지, 길가에 양귀비 꽃이 매 년 피는 지 대답 해 줄 수 없다는 말이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하와이에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래서 돌고래도 맨날 보고 가끔 지나가는 향유고래도 보고 지느러미만 보고 저 올카가 지미인지 톰인지 새라인지 맞추는 일상을 살았으면 하고 있다. 문득 문득 하와이언 멜로디를 떠올리고 따뜻한 바람보다 찬바람이 더 많이 부는 이 곳 골목을 걷다 꽃목걸이를 떠올리고 야자수 남방을 떠올리다 말도 안되는 것들을 사올 때가 있다. 어제 마침 바디젤이 떨어져서 외출 한 김에 드러그샵에 들렀는데 평소같으면 무난한 꽃향기나 올리브 아니면 사해소금이 들었다는 스파향(?) 바디워쉬를 골라왔을 텐데 어디서 하와이 바람이 불어왔는지 계산대에 올려진 것은..... 노랗게 타오르다 주황빛으로 물들다 보라색으로 지는 노을에 야자수 그림자가 비치는 그림에다 썬댄스향 이라고 적힌 어떤 형광하늘색 파워에이드 빛의 바디워쉬 였다. 향기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외... 선크림을 듬뿍 바르고 한 여름에 수영장이나 바닷가에서 놀다 샤워를 할 때 나는 그 버터같은 향 이랄까...? 약간 멀미가 날 듯한 오일향이다. 이 향-향이라고 말하기에는 거창하지만 엄연히 자스민 꽃 향 이라고 쓰인 바디워쉬 사이에 있었으므로- 속에는 언제나 노곤하면서도 보송보송하고 졸음이 쏟아지면서 아직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감싸고 발에 묻은 모래가 마르길 기다리며 그을린 동생을 놀리고 햇살에 익은 얼굴들을 보며 저녁을 먹으러 가던 기억으로 가득하지 않은가. 홍차와 마들렌의 향기를 타고 심상으로 담아둔 이야기들을 적셔 끝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프루스트가 부럽지 않게 나는 이 썬댄스 향기를 맡음과 동시에 나의 마음속에 담긴 끝낼 수 없는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흥분한 손으로 이 물건을 집어 온 것이었다. 그랬다.
집에 돌아와 사온 물건들을 꺼내어 욕실 수납장에 하나 씩 꺼내 올려 놓고 썬댄스를 짜서 손을 씻으며 무언가가 맘에 들지 않는 다는것을 확실히 느꼈다. 썬댄스... 썬댄스.... 춥고 습한 겨울의 나라 독일 공장에서 생산했다는 이 썬댄스 향은 왜 이름이 썬댄스인가. 하고. 일단 노랗게 단풍이 든 커다란 00나무가 보이는 창 밑에 라디에이터를 돌리고 있는 내 집에 이 썬댄스라는 것이 어울리지도 않을 뿐더러 배가 고파서 그랬는지 뭔가 모르게 맛살을 먹고 나서 그 비닐을 싱크대에 올려두면 오며가며 공기가 움직일 때마다 스물스물 나는 그 맛살 껍질 향이라고 해야하는 지 아무튼 알 수 없는 어떤 어지러운 것이 손에 묻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배가 고픈데 이 냄새때문에 숟가락 든 손을 입으로 가져갈 때마다 훅 올라오는 멀미때문에 밥맛도 떨어질 지경이 되는 것이다. 어느정도인가 하면, 이 썬댄스로 씻고 난 후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서 멀미를, 아니 더 쉽게 말하면 무슨 일을 해도 이 썬댄스의 존재감때문에 하루종일 바디워쉬생각을 하고있는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바닷가에 가서 썬크림을 바르고 수영 한 번 안 해본 사람이 있겠냐마는 태평양 가운데 떠있는 섬나라 민트빛 바닷물에 둥둥 떠다니는 일상을 동경하는 나같은 사람의 꿈을 이렇게 농락하다니.... 나는 이 바디워쉬회사의 상술에 그대로 놀아난 것이다. 심지어 지금껏 모아놓은 마음속 심상까지 떠올리며 맛살향 오일에 두웅두웅 떠다니고 있었던 나를 보며 나는 여지껏 도대체 얼마나 많은 것들에 혹하여 시간을 보냈을까 하는 깊은 회의에까지 생각이 미친다.
쓸데 없이 나를 심문하고있다. 나는 무엇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있나. 하고. 맛있어보이는 과자 광고를 보고 샀는데 별 맛이 없더라 하는 정도의 문제로 뭐 이렇게 글을 쓰나 싶고, 겨우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식상한 주제를 가지고 별 것 없는 글을 쓰나 싶지만 보이는 대로 아니 묻어나는 대로 그것도 내가 사는 모습이었으면 해서 글을 써본다. 썬댄스라는 이름으로 사는데 실은 맛살 껍질 향이 나는 인생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하지만 그래도 과대포장에 속아 비싼 값을 치르지 않았다는 것으로 위로 삼아 '위조작품에도 진품의 면모가 있다' 는 베스트 오퍼의 대사를 기억해 내며 썬댄스를 고른 나의 실수에 조그맣게 여운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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