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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흔들린 사진.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우리는 어떤 일에도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죽기도 하는데. 뭐가 그리 걱정이야. 잘 지내면 되지. 지금 잘..." 아무리 심각한 상황이 또 이어져도, "아유 죽기도 하는 세상, 그런 것 쯤이야 얼마든지 겪을 수 있는거야." 그래서 나는 하루하루, 매일매일 소중하고 즐겁게 보내려고 기도한다. 언제든 누가 내 기도의 내용이 뭐냐고 물어보면 자동으로 나오는 대답이 되었다.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 된 것이 아니냐고, 사실은 또 언젠가는 이 말에 무뎌지는 거 아니냐고 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초점이 흔들린 엄마의 셀카 사진을 굳이 용량이 가득찬 핸디에 꾸역꾸역 다운 받으면서. 나는 이 기도가 습관같이 되어버리지 않을 것 이라고 생각했다. 선명한 사진도, 그리고 초점이 흔들린 ..
설마 설마 설마 설마 했는데.... 이럴수가..... 여름이라고! 여름! 한국 장마 떠나서 좋아했더니만, 이건 뭐 거의 장마수준... 장마땐 그래도 중간중간 해가 뜨기라도 하지...! 아무리 세 가지 전선이 만나는 이 동네라지만 이 아름다운 여름날에도 이럴거니! 해 박두진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너머 산너머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 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거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
'아프릴베터'라고 하는 독일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는 4월의 날씨 라는 말인데, 독일의 4월 날씨가 워낙에 변덕스러워 붙여진 말입니다. 한국은 장마라 비가 왔다 안왔다 한다지만, 지구 날씨다 전체적으로 이상한 것인지, 제가 사는 이 동네가 워낙 날씨가 안 좋기로 유명해서 계속 이러는 것인지 6월 말이 되었는데도 계속 이놈의 아프릴베터 탓에 마음 놓고 산책도 못 하는 지경입니다. 아침엔 햇살이 나기에 일찍 나가서 산책을 좀 하고 도서관으로 가야겠다 싶었습니다만, 웬 걸 나와보니 금새 구름이 켜켜이 쌓이더니 앞도 안 보이게 굵은 빗방울이 떨어져댑니다. 어디 나무 밑에 들어가서 좀 비를 피하다가 다시 쨍 하게 나오는 햇살이 반가워 오랜만에 학교식당으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한 첸트랄프리트호..
무엇을 보고도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던 이십대 초반이 지나고, 스무살 남짓한 친구들을 보면 '아 나도 이제 늙었구나'싶은 아쉬운 이십대 중반이다. 어른들이야 '아친구 어직 어린친구가 벌써 그런 말을 하면 못 써' 하시겠지만 이렇든 저렇든 아쉬운 시간은 지나가고 그 아쉬움으로 가끔은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고픈 나이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십대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던 적은 없었다. 어른이 빨리 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어느때까지나 어린아이로 지내고 싶어하지도 않았지만 싱그러웠던 스무살이 지나간 것이 아쉬운 것이야 똑같아 서글퍼진다. 지나가는 구름을 보고도 내리는 비를 보고도,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을 보고도, 나뒹구는 나뭇가지를 보고도, 떠..
"네가 행복해지길 바래. 지금의 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와 함께있는 네가." "요새는 아무것도 재미있지 않아." ".................." "그냥 다.... 다 그냥 그래서 무엇도 다 그냥 그래. 말 그대로 그냥 그래." 찻잔 속의 차도 그냥 그런 온도로 식어있다. 찻잔을 이리저리 돌려도 그냥 식은 찻 물일 뿐이지. 찻잔 속의 남아 겉도는 식어버린 차가 마음속의 어떤 열정도 식어 마시기 뭐 한 찝찝함으로 담겨있다. 담겨있을 뿐인 걸까. 티백의 미세한 구멍을 삐져나와 어느덧 컵 바닥에 가라앉은 찻가루가 보이는, 원래는 따뜻했던 향기로운 차가 그저 식었다는 이유만으로 남이 먹다 남긴 반 모금 물처럼 마시기엔 영 찝찝한 설거지거리가 된 것 처럼. 설탕으로도 과자로도 넘길 수 없는 식어버린 차. ..
내 마음은 울렁거리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것에. 그렇다. 분명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 때문에 울렁거리고 있다. 마음이 이 쪽 벽에, 저 쪽 벽에 마구, 난로에 넣는 기름통 속 출렁거리는 기름처럼. 뚜껑을 열면 벤진 냄새가 진동을해서 코를 막아야하는 기름같은 마음의 물이 울렁거린다. 멀어져 간다고 느껴서일까. 그렇다면 무엇이. 무엇이 머물지 않아서 나는 출렁이고 있는 걸까. 바다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도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바다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바다를 바라보지 않는다. 바라 볼 수가 없다. 바라볼 수가 없는 걸까. 나는 바다를 바라볼 수 없는 걸까. 아무 것도 섞이지 않은 듯 투명한 바닷속을 바라볼 수가 없는 것이다. 하얀 물거품을, 햇빛이 또 하얗게 부서지는 하늘의 파란 것과는..
찍어 놓을 것을 그랬다. 엄마 말씀엔 언제든 머리속에 사진을 찍어 놓으라고 하시지만... 그래도 사진으로 콱 찍어 놓을 것을 그랬다. 언제든 볼 수 있게 찍어 둘 것을 그랬다. 아빠랑 걷던 오월 초의 흐렸던 하늘 밑 초록잎 파릇한 은행나무가 그렇게 싱싱하던 민락동 빵집 앞 약국 옆, 그 길가는 언제가 되도록 보고싶을 것 같은데... 기억만으로는 끝까지 기억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뽀얗게 혹은 멋지게 기억을 더해서 상상하고 싶지 않은데... 나중에라도 다시 보고 그 기분은 기억이 안 나서 아쉬워지면 어쩌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달라서 놀라면 어쩌지. 머리속에 사진을 찍으라는 말이 왜 이번엔 이렇게 아쉬운거야 믿는 구석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기같은 이야기일까? 세상에 아빠가 없어서 믿을 구석이 없..
말 그대로 술술 씁니다. 한국을 떠나온 지 벌써 5년도 넘어가니, 한국의 상황은 남 일 같습니다. 방학 중에 가족들 방문 차 한국에 나가서도 초반처럼 친구들을 만나랴 정신 없이 시간을 쏟아 부을 그리움도 줄어들고, 오히려 집에서 뒹굴뒹굴 매끼 엄마 밥을 먹는 것이 더 좋아졌습니다. 지금 벌써 몇 주 째 메르스 바이러스로 실시간 검색어가 도배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조용할 날이 없는 한국을 떠올리니 늘 그랬듯 퇴근 시간에 가득찬 차도와 꽉 찬 지하철, 버스가 생각이 납니다. 제가 있는 곳은 어디를 가도 여유롭고 한적한 곳이어서, 조금만 부지런해도 자전거를 타고 숲속을 한 바퀴 돌 수 있고, 호숫가로 휭- 바람을 쐬고 와도 되고, 슬리퍼를 신고서도 언제든 노을이지는 나무 사이를 걸을 수 있습니다. 절로 여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