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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살다보니까. 절대 안 겪을 것 같던 일도 겪고 산다. 아직 서른도 안 되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쓰면서도 무슨 소리야 싶지만 그렇다. 가을날은 화창하고 커피머신은 아직 켜져있다. 커피를 내린 지 한 두시간 쯤 되었을거다. 바깥은 조용하고, 새도 아주 조그맣게 울고, 바람도 없어서 낙엽도 지지 않는 오후다. 한참 아미앵의 성서를 찾아보았는데 찾는 데 실패했다. 원래 분량이 한 장 정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디지털 시대라고 말하기에는 이 디지털이라는 단어도 하도 오래 되어서 촌스럽게 느껴지는데 아무튼 나는 이 시대를 사는 이십대 재빨라야 할 나이에 정보하나 제대로 못 찾는 뒤떨어진 젊은이다. 프루스트는 젊은 시절을 어떻게 보냈을까 했는데, 작가 소개를 펴보니 이렇게 쓰여있다. 1922-187..
내가 존재하는 소리보다 이 공간을 더욱 채운 냉장고 소리. 이 방에는 냉장고가 살아있다. 나보다 더 강력히. 냉장고 소리에 파묻혀 누워있다. 여름 날에나 있는 일이다. 발콘 쪽 큰 문을 열어 두었는데도 빠져나가지 않는 냉장고의 목소리가 나를 쫓아내려 하는 건가. 열린 문으로는 아무도 나가지 않고 들어오기만 한다. 이상하게 꾸웩대는 새가, 올 해 희한하게 많은 벌이, 꼭 집 혼자 있으면 어느새 들어온 자동차가, 하늘에 날아가는 헬리콥터가 두두두두. 냉장고 소리에 묻혀 있다보니 귀를 스치는 파리 소리가 새삼 신선하다. 윙 윙 하는 소리가 엄청 좋은 헤드셋을 끼고 듣는 영화 속 액션 장면 같다. 왼쪽 오른 쪽 윙윙 하니 소름이 돋는 생생한 소리가 냉장고보다 내가 더욱 살았구나 하고 깨워내어서 세수를 하러 화장..
동생에게 주었던 오래 전 엠피쓰리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노래가 흘러 나온다. 십대 때 듣던 노래들. 랜덤으로 넘기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추억들이 떠올라서, 애틋했던 그 시절 동네가 그리워져서 사 분 남짓한 시간이 어느 여름 하루가 되고, 삼 분 이십초의 시간이 어린 가슴에 처음 닿았던 쓸쓸한 바람으로 분다. 부푼 마음을 안고 탔던 비행기 안에서 울며 들었던 그 노래가, 스무살의 처음 맞았던 타지에서의 생일 전 날 밤이, 휴일 오후 혼자 해 먹었던 볶음밥이 서러웠던 시간이, 어슴푸레하게 내려 앉은 공기를 마시며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어딘가라고 들떠하며 조용한 주택가 언덕길을 내려오던 날이 랜덤으로 넘어가는 트랙에 남아있다. 잊었는 줄 알고 늘 아쉬워했던 그 기억들이 아직 내 귀속에 남아서 뉴런들 사이사..
시험 기간.. 졸리다. 파이팅! 포기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재미라는 것은 참을성이라는 필터를 통해야 비로소 표출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있고........" 하루키 참을성이라는 필터 통과 중-
삼십 도가 넘는 더위에 헥헥 거리는데도, 여름답지 않다는 느낌적인 느낌. 이유는....... 매미였다. 매미.......... 매미가 맴맴 해야 되는데 너-무 고요한 것이지. 유튜브에 매미소리를 치니... 나오네...? 매미소리를 누군가 올려놓았다니... ㅋㅋㅋ 고마워요- 매미소리 틀어놓고 메밀국수 한 그릇- 여름이로구나! 매미소리가 이렇게 좋다니:) 어릴 적 베란다 그물망에 매미가 앉아서 하루종일 울어대서 쫓으려 가보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큰 매미에 겁을 먹고 쫓아내지도 못했더랬지. 시끄러움을 참고, 창도 못 열고 익어가고 있는데 나중 나중에 아빠가 오셔서 날려보내주셨지.... 그리운 어린시절 여름날들- '매미소리에 깊어지는 여름 봉숭아는 톡'
밤이 되었는데도 30도 밑으로 내려가지를 않는다. 덕분에 마치 여행이라도 온 듯 하다. 열한시가 다 된 구시가를 걸으면서 사진을 찍으니 기분이 꼭 배낭여행이라도 온 것 같다. 몇 년 전 만해고 자주 이렇게 다녔었는데 귀차니즘인지 요새는 주말에도 집에서 뒹굴거리기만 했네.. 미지근한 바람이래도 밤바람은 좋구나- 여름 밤 바람~
산산한 한여름 밤에 놀러가는 놀이공원:) 여름 밤 젠트가 제일이라죠~ 맛있는 츄러스 한 봉지 들고 새우꼬치에 팝콘에 수제 감자칩에~ 인형뽑기 한 판- 야경을 내려다보며 자이로스윙 한 번 타면 스트레스도 싹~ 전 자이로스윙은 너무 무서워서 못 타지만 지인들 타는 걸 보니 덩달아 신나고 좋더군요. 관람차는 참 자주 어떤 이야기의 소재로 등장하는데, 그래서인지 올 때마다 이 관람차는 아련-한 것이 어릴 적 생각도 나고 안 들리던 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막 그렇습디다.
흔들린 사진.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우리는 어떤 일에도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죽기도 하는데. 뭐가 그리 걱정이야. 잘 지내면 되지. 지금 잘..." 아무리 심각한 상황이 또 이어져도, "아유 죽기도 하는 세상, 그런 것 쯤이야 얼마든지 겪을 수 있는거야." 그래서 나는 하루하루, 매일매일 소중하고 즐겁게 보내려고 기도한다. 언제든 누가 내 기도의 내용이 뭐냐고 물어보면 자동으로 나오는 대답이 되었다.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 된 것이 아니냐고, 사실은 또 언젠가는 이 말에 무뎌지는 거 아니냐고 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초점이 흔들린 엄마의 셀카 사진을 굳이 용량이 가득찬 핸디에 꾸역꾸역 다운 받으면서. 나는 이 기도가 습관같이 되어버리지 않을 것 이라고 생각했다. 선명한 사진도, 그리고 초점이 흔들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