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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무엇을 보고도

MedHase 2015. 6. 23. 07:11

무엇을 보고도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던 이십대 초반이 지나고, 스무살 남짓한 친구들을 보면 '아 나도 이제 늙었구나'싶은 아쉬운 이십대 중반이다. 어른들이야 '아친구 어직 어린친구가 벌써 그런 말을 하면 못 써' 하시겠지만 이렇든 저렇든 아쉬운 시간은 지나가고 그 아쉬움으로 가끔은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고픈 나이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십대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던 적은 없었다. 어른이 빨리 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어느때까지나 어린아이로 지내고 싶어하지도 않았지만 싱그러웠던 스무살이 지나간 것이 아쉬운 것이야 똑같아 서글퍼진다.


지나가는 구름을 보고도 내리는 비를 보고도,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을 보고도, 나뒹구는 나뭇가지를 보고도, 떠나는 기차를 보고도, 골목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서도 다홍빛 노을의 봉우리에서 부는 산바람 향기를 맡을 수 있었는데,,, 어느새 무엇을 보고도 신기해하던 어린시절이 지나간 것처럼, 아기강아지들이 모든 나무의 냄새를 맡으려고 기를 쓰던 시기가 지나면 어느덧 도도하게 갈 길을 정해 늘 같은 자리에만 영역표시를 하는 것처럼, 에너지를 쓰지 않고 효율적인 생각만을 하도록 하는 뉴런만 남은 것 같다. 진득하니 하나의 주제를 끊어냈던 끈기도 시들해진 것 같다. 그냥 나이가 들어가서일까. 그건 아니겠지. 누구의 말대로 성숙해져가는 것이 나이를 먹어가며 얻는 것이라면 끈기와 관찰력 그리고 안목, 세련된 표현도 더 쌓여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문제는 어디에 있는걸까. 늘 먹는 같은 아침식사가, 아니면 늘 마시는 카푸치노가 그것도 아니면 학교식당의 색깔은 분명 다른데도 같은 맛이나는 소스가, 매일 저녁의 같은 구도의 노을이, 매일 밤 주황빛으로 창을 스치며 달리는 n85 버스노선이 문제일까. 너무나 익숙한 것들에 둘러싸여 새로울 것 없는 매일의 시간이 호기심을 담당하는 뉴런을 멈춰버린 것일까. 그래서 불어오는 바람도 늘 같은 향기를 풍기고, 매일같은 회색빛하늘은 같은 기분을 불러일으키고, 늘 같은 카페의 카푸치노는 같은 만큼의 풍미만을 느끼게하는 것일까. 달리는 빨간 열차를 보아도 쾰른이든 뒤셀이든 아니 아헨이든 어디로 가겠지 라고 해 버려서 이제는 이 빨간 열차의 종점이 어딘지, 그곳의 바람은 어떤 향기일지, 그곳의 사람들은 어떨지, 그곳에서 가장 맛있는 빵집은 어디일지, 다리는 있을지, 신호등은 어떻게 생겼을지, 가로등은 몇시에 켜질 지, 작은 길가엔 양귀비꽃이 피었을지 따위는 설렘으로 다가오지도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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