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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무엇을 보고도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던 이십대 초반이 지나고, 스무살 남짓한 친구들을 보면 '아 나도 이제 늙었구나'싶은 아쉬운 이십대 중반이다. 어른들이야 '아친구 어직 어린친구가 벌써 그런 말을 하면 못 써' 하시겠지만 이렇든 저렇든 아쉬운 시간은 지나가고 그 아쉬움으로 가끔은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고픈 나이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십대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던 적은 없었다. 어른이 빨리 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어느때까지나 어린아이로 지내고 싶어하지도 않았지만 싱그러웠던 스무살이 지나간 것이 아쉬운 것이야 똑같아 서글퍼진다. 지나가는 구름을 보고도 내리는 비를 보고도,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을 보고도, 나뒹구는 나뭇가지를 보고도, 떠..
"네가 행복해지길 바래. 지금의 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와 함께있는 네가." "요새는 아무것도 재미있지 않아." ".................." "그냥 다.... 다 그냥 그래서 무엇도 다 그냥 그래. 말 그대로 그냥 그래." 찻잔 속의 차도 그냥 그런 온도로 식어있다. 찻잔을 이리저리 돌려도 그냥 식은 찻 물일 뿐이지. 찻잔 속의 남아 겉도는 식어버린 차가 마음속의 어떤 열정도 식어 마시기 뭐 한 찝찝함으로 담겨있다. 담겨있을 뿐인 걸까. 티백의 미세한 구멍을 삐져나와 어느덧 컵 바닥에 가라앉은 찻가루가 보이는, 원래는 따뜻했던 향기로운 차가 그저 식었다는 이유만으로 남이 먹다 남긴 반 모금 물처럼 마시기엔 영 찝찝한 설거지거리가 된 것 처럼. 설탕으로도 과자로도 넘길 수 없는 식어버린 차. ..
내 마음은 울렁거리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것에. 그렇다. 분명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 때문에 울렁거리고 있다. 마음이 이 쪽 벽에, 저 쪽 벽에 마구, 난로에 넣는 기름통 속 출렁거리는 기름처럼. 뚜껑을 열면 벤진 냄새가 진동을해서 코를 막아야하는 기름같은 마음의 물이 울렁거린다. 멀어져 간다고 느껴서일까. 그렇다면 무엇이. 무엇이 머물지 않아서 나는 출렁이고 있는 걸까. 바다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도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바다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바다를 바라보지 않는다. 바라 볼 수가 없다. 바라볼 수가 없는 걸까. 나는 바다를 바라볼 수 없는 걸까. 아무 것도 섞이지 않은 듯 투명한 바닷속을 바라볼 수가 없는 것이다. 하얀 물거품을, 햇빛이 또 하얗게 부서지는 하늘의 파란 것과는..
찍어 놓을 것을 그랬다. 엄마 말씀엔 언제든 머리속에 사진을 찍어 놓으라고 하시지만... 그래도 사진으로 콱 찍어 놓을 것을 그랬다. 언제든 볼 수 있게 찍어 둘 것을 그랬다. 아빠랑 걷던 오월 초의 흐렸던 하늘 밑 초록잎 파릇한 은행나무가 그렇게 싱싱하던 민락동 빵집 앞 약국 옆, 그 길가는 언제가 되도록 보고싶을 것 같은데... 기억만으로는 끝까지 기억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뽀얗게 혹은 멋지게 기억을 더해서 상상하고 싶지 않은데... 나중에라도 다시 보고 그 기분은 기억이 안 나서 아쉬워지면 어쩌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달라서 놀라면 어쩌지. 머리속에 사진을 찍으라는 말이 왜 이번엔 이렇게 아쉬운거야 믿는 구석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기같은 이야기일까? 세상에 아빠가 없어서 믿을 구석이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