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얼마 안 살았지만 살다 보니까. 본문

단상

얼마 안 살았지만 살다 보니까.

MedHase 2015. 11. 3. 22:29



살다보니까. 절대 안 겪을 것 같던 일도 겪고 산다. 아직 서른도 안 되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쓰면서도 무슨 소리야 싶지만 그렇다. 가을날은 화창하고 커피머신은 아직 켜져있다. 커피를 내린 지 한 두시간 쯤 되었을거다. 바깥은 조용하고, 새도 아주 조그맣게 울고, 바람도 없어서 낙엽도 지지 않는 오후다. 한참 아미앵의 성서를 찾아보았는데 찾는 데 실패했다. 원래 분량이 한 장 정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디지털 시대라고 말하기에는 이 디지털이라는 단어도 하도 오래 되어서 촌스럽게 느껴지는데 아무튼 나는 이 시대를 사는 이십대 재빨라야 할 나이에 정보하나 제대로 못 찾는 뒤떨어진 젊은이다. 프루스트는 젊은 시절을 어떻게 보냈을까 했는데, 작가 소개를 펴보니 이렇게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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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1871= 51. 어디선가 프루스트가 더 오래 살지 못해 아쉬워 하는 글을 읽었던 것 같기도 한데. 쉰 하나라는 나이는 단명이라고 하기엔 그리 짧아 보이진 않는다. 약한 체질과 평생 앓았다는 천식으로 고생했다는 부분도 와 닿지 않는다. '나 지금 이정도로 마음이 피폐한가...' 싶지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대작을 남긴데다 존 러스킨을 알았고, 자신의 예술론을 맘껏 펼쳣고, 유복한 가운데 자랐다는 프루스트의 삶이 조금 더 길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없다. 쓰고보니 내가 지금 많이 마음이 비었거나, 상당히 세상을 미워하거나, 내가 사는 삶에 어떤 불만이 많아보이는데, 그런 것들 보다 사실은 푸르스트를 아주아주아주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해 본 적 없던 생각이 요즘들어 쑥쑥 파고 든다. 가족이라는 것이 세상 어떤 단어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러한데, 전에는 생각 해 본 적 없던 말들이 이제와서 마음을 찌르는 가 싶다가도 곰곰이 생각하다 어느새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있으니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뀐건지 어떤 이들이 나를 보는 눈이 바뀐건지 이 화창한 가을날이 서글프게 궁금해진다. 모든 일에는 늘 이유가 있더라 하는 결론을 어떤 일들가운데 내 본적이 종종 있었는데, 이 경우에는 '늘 이유가 있더라... ' 하는 결론을 마음이 아파서 내릴 수 없다. 일단 그렇다. 모든 일에 '늘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더라.'로 바꾸기로 한다. 한 친구 녀석이 "나는 그런 사람들 정말 싫어. 모든 일에 핑계를 대는거야 주변에 꽤 많더라고. 부모님 중에 한 분이 돌아가신 사람들. 그런데 그런 사람들하고 일을하면 피곤해. 자꾸 자기 상처를 보듬어 달라고 떼를 쓰거든.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지. '나는 원래 이래. 어쩔 수 없어. 나는 이런 상처를 가졌어. 힘들어. 힘들어서 내 성격이 이래.' 너무 당연하게 알아달라는 투로 이야기하면 더 말 하기가 싫어져. 그렇잖아?" 예전 같으면 맞장구를 치며 별 생각없이 잊고 마는 지나가는 대화일텐데 반년이 넘도록 생각이 나는 거 보면 아무튼 나도 어떤 상처를 벌리고 아파요.. 하고 있는 짜증나는 사람인가 싶어 가끔 곱씹어본다. (화가나는 것도 아니고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려는 의도로 그렇게 하는 것이니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면 좋겠다.) 내가 당해본 일이 아니고서는 위로하기가 쉽지 않은 일들이 늘 생기는데, 이 친구가 오래오래 이런 마음을 몰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너그럽게 생각없이 웃을 수 있는것은 내가 가지는 좋은 점이다. 커피소년의 '상처는 별이되죠' 라는 가사는 이럴 때 참 절묘하게 맞아서 웃프게(?) 부를 수 있는 동생과 나는 마음이 더 여유로와 더 많은 사람들을 눈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 짠한 마음으로 읽고 있을 당신을 압니다. 그러나...- 쓰려고 했던 것은 이런 대단한 일도 아니고 사실 조그마한 일들을 겪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 매일매일 겪는 일들 중에 아 이런 일도 있구나.. 하는 것들 말이다. 예를 들어 알바 자리를 찾으러 갔는데 사람이 다 차서 혹시 자리가 나면 연락을 하겠다 하는 일을 겪는 것 같은 것. '예를 들면'으로 속이고 싶었는데 책상에 앉아 조그만 키보드를 두드리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면 다들 어이가 없겠지요...?? 이런 사회 초보 같으니라고.. 하고 그만 읽을 수도 있겠지요....??
다시 푸르스트로 넘어가서, 아마 그는 이런 기분은 몰랐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의 이력을 훑어 본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사교계와 살롱을 드나들며 인간에 대한 통찰을 쌓았다는 작가는 어린 시절 고이고이 쌓아둔 심상을 더해 이렇게나 대단하게 '잃어버린 시간'들을 찾아냈다. 그도 아마 겪은 일들과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수없이 조그맣게 쌓아 두었겠지. 천식 있는 애들은 운동 할 때 같이 하기 힘들더라... 하는 어이 없는 말을 못 들은 척 했던 적이 있을지도 모르지. (예가 너무 유아적이지만) 소중히 모든 일상을 사랑하여 심상으로 간직했다 시간을 더듬어 마침내 잃어버린 시간을 찾은 프루스트를 보면서, 행복하기만 하지 않은 이 소중한 시간들과 겪지 않아도 될 이야기들도 다 모아두어야 할 것 같은 강박증에 이 메모 저 메모를 뒤져보려다.. 그래봐야 잊을 것은 잊고 기억 할 것은 어느날 기억이 나더라.. 하는 경험을 살려 뒤끝은 자르고 평온한 가을 나뭇가지를 바라본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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