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인생에서 가장 아까운 시간. 본문

단상

인생에서 가장 아까운 시간.

MedHase 2015. 11. 12. 00:04

책상에 앉아 공부하기 전에 늘 들여다보게 되는 한 참 지난 달력이 있다. 탁상달력이고, 한 5년 전엔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지인이 주고 간 달력이었던 것 같다. 날짜는 4월 13일에서 넘어가지 않았다. 년도가 쓰여있지 않아 다행인데, 왜냐하면 달력이라는 것이 원래 해가 바뀌면 치워야 마땅한 물건임에도 년도가 없으니 그 자리에 몇 년 째 놓여 있으면 으레 생기는 죄책감 같은 게 없는 물건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침대나 전등이나 토너가 다 된 프린터나 책들처럼 먼지만 떨어내는 그런 가구가 되어 자리를 차지했다. 내 책상은 늘 볼펜으로 가득하고, 색연필도 한 다스, 읽던 책들이 여기저기, 그리고 학교노트들이 마구 쌓여 있는데다 이래저래 생각날 때마다 써 놓은 몇 년 째 묵은 포스트잇들도 아무대나 붙어 있어서 별 신경을 쓰지 않으면 여러 군데 시선을 두다 달력의 글에는 결국 초점을 흩뜨리는 경우가 더 많다. 꼭 오늘처럼 저녁 약속이 있거나 나가기 싫어도 반드시 집을 나서야 하는 그런 날 저 달력의 글이 또렷하니 생각을 부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적잖이 나쁜 선택을 했다. 나쁜 친구, 나쁜 직업, 심지어 나쁜 배우자를 선택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후회만 남는다.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그 어리석은 선택만 하지 않았더라면...' 그래도 괜찮다. ........... (중략) "

읽다 보면 저 짧은 글 속 띄어쓰기마다 심장이 철렁 철렁 내려 앉는다. 커피를 마시다가 읽으면 나도 모르게 커피를 삼키지 못하고 머금고 숨을 참다가 글을 다 읽고 나서야 삼킨 다는 것은 오늘에서 알았다. 10초도 안 되는 시간에 지금껏 알던 모든 이들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되감는다. 결국에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지...' 하는 한심한 심정으로 한숨을 쉬다 글 위에 쓰여진 April. 13 을 보고야 '아 다 지난 달력인데 넘길까?'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늘 이렇게 뜨끔하는 글은 평소에 계속 두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으로 끝난다. 그래서 내 탁상달력은 저 자리에 3년 째 4월 13일이다.

미운 사람이 제일 먼저 떠오르고, 그와 나누었던 이야기와 감정이 아깝다는 생각이 그 다음으로 지나간다. 지나간다는 말이 맞는 것이, 처음에는 내 아까운 시간... 왜 그런 데에 시간을 쏟았을까 멍청했던 지난 날들에 갑자기 화가 치밀다가도 생각해보면 나도 참 어리석어 미안한 마음이 들고, 그러다보면 아까운 시간만큼 열심히 지금을 사는 게 맞구나 해서 무릎을 꿇게 되어 그렇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다 그런 시절이 필요했었구나 하고 달력에서 눈을 떼어 낸다. 그런데 오늘 따라 끈덕지게 시선이 붙어 떨어지지를 않는다. 세세한 말들과 상처를 주고받은 대화들을 되새기다 다시 꾹꾹 인상을 쓴다. 이래서 내가 잘해준 사람은 생각이 안 나고 결국 잘 못해준 사람만 끝까지 생각이 난다는 말이 있는걸까. 사람들은 다 영혼이 있어 말 하지 않아도 좋아하는 지 싫어하는 지 안다던데, 사실은 내가 먼저 상처를 준 것이 아닌가..........

날씨가 일주일 째 우중충해서 생각이 많아진걸까... 벌써 수백번 미워한 이에게 사과를 몇 번이나 했던가... 수백번 멍청했던 나를 탓하고 슬퍼하고 한심해하다 괜찮다 괜찮다 몇 번을 위로했나... 사람이 별 수 없다지만 이렇게 별 수가 없다. 역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심리테스트는 전혀 믿을 수가 없다. 뒤끝이 없는 쿨한 당신이라더니 나는 이렇게나 이렇게나 끈덕지게 뒤끝이 길다. 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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